내가 그 여름을 떠나면서
여름은 언제나 헛된 저녁이었다
저물녘이면 헐렁한 반바지에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아무렇게나 자란 풀들의 길을 따라
내일을 희롱하며 내걷고 있었다 그럴 때면
바람이 터진 기억의 솔기를 자꾸 꿰매며
나를 밀어내는 탓인지 그 때의 들풀 냄새가
나는 듯할 뿐이어서 더욱 손을 내저어 보는데
그럴수록 멀찍이 물러서는 냇물과 산그늘이 있었고
다만 저녁의 푸른 집들만 도드라져서
손 앞에서 잡힐 것만 같았다 여름날 저녁
세상의 모든 윤곽선들은 반듯하였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오늘의 일과를 마치며
집으로 돌아가는 간선도로의 질주 아래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추억의 박제가
또 산산이 깨어져 있었다
여름날 저녁 / 심재휘
휑하니 몸 속에서 무엇인가가 빠져나온 느낌이다
오장육부인지 뇌수인지 알 수 없는 물질이 지렁이처럼 스멀스멀 빠져나간다
모든 것이 이렇게 쉽고 시간이 이렇게나 빠르다는 사실에 슬피 울어본들
환상으로 충만한 낭만의 시간은 이미 저기 등 뒤로 한참 멀어졌다
그것은 고독에의 새빨간 유희이자 기만이었다
이제, 현실과 진리를 향해 걸어가야할 시간
힘없는 걸음걸이는 천천히 늪을 향해 내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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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나라의 6.25 전쟁 59 주년과 팔레스타인의 나크바(1948년의 ‘대재앙’) 61 주년을 맞아, 저희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는 2009년 6월 5일부터 11일까지 삼청동 갤러리 영에서 양국의 미술작가 11명(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출신 작가 6인, 한국 작가 5인)을 초대하여 전시회를 열 예정입니다.
가자 지구에도 당연히 사람이 살고 있고 사람 사는 곳이면 당연히 있는 문화와 예술이 있건만, 이 당연한 말이 놀랍게 들릴 정도로 가자 지구하면 전쟁과 분쟁이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저희는 이번 전시회가 자욱한 포연에 가려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과 예술을 만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전시에는 회화 뿐 아니라 사진과 동영상 등 다양한 매체가 어우러질 것입니다. 초청된 6명의 팔레스타인 작가들은 프랑스, 로마, 오슬로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로 모두 가자 지구 출신입니다. 불행한 역사로 인구의 대부분이 디아스포라 상태로 떠도는 팔레스타인의 미술 흐름을 보여주리라 기대됩
이 전시회는 <한국-아랍소사이어티>의 후원을 받습니다.
오프닝 행사 6월 5일 5시 30분 팔레스타인-한국 작가 합동 라이브 페인팅 음악: DJ Soulscape
오시는 길 갤러리 영 -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140번지 - 대중교통: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 - 마을버스 2번 승차 - 감사원 하차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 - 마을버스 11번 승차 - 금융연수원 하차 1호선 시청역 4번 출구 - 마을버스 11번 승차 - 금융연수원 하차 - 주차시설 있음 - 전시 시간: 오전 11시 ~ 오후 7시 30분
팔레스타인의 분리장벽과 한국의 분단장벽이다. 우리는 1950년 6.25 전쟁으로 우리 땅에서 우리 사람들끼리 전쟁을 벌이는 아픔을 겪었고, 팔레스타인은 1948년 나크바(대재앙)를 겪은 이후 수백만 명이 자기 땅에서 쫓겨나 떠돌이 난민으로 살고 있다.
6.25 전쟁이 일어난 지 59년, 나크바가 있은 지 61년. 서울과 가자지구에서 난 젊은 작가들 속에 이 사건들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지, 그 역사의 흐름이 어떤 결과로 이들에게서 드러나는지 들여다본다.
그리고 아시아 대륙 이 끝에서 저 끝, 지리적으로 먼 두 나라 작가들이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고 공통 기반을 찾아내어 이해해가는 느린 과정을 지켜본다. 이를 위해 이들은 서로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서로에 대해 공부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
- 기냥 탄식과 술만 늘어가고 있으니 누가 머리 좀 한 대 쳐주시오.
1. 조삼모사의 꼴인 한국 정치판.
2004년 탄핵정국 꼴과 전혀 바뀐 것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BGM은 윤민석의 ‘너흰 아니야’)
정치판이 한나라-민주냐 민주-한나라냐에 따라 반응하는 꼴이 조삼모사지 말입니다.?
근데 둘이 뭐가 다른건가요? 응?
2. 집회 유감
5/29
대중은 경제심급 앞에서 침묵하고, 진보세력들은 경제적 아젠다를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
옆에 손잡은 그는 노란종이에 '노무현은 서민의 친구'라고 써붙여진 글귀를 보고는
서민 옆에 삼성이라는 단어를 부단히 함께 써주고 있었으며,
나는 '쥐수포(收捕: 거두어 잡음- 상점에서 파는 덫으로 추정.)'를 든 테러범을 보며 내심 '거사'를 기대했던 것 같다.
다들 풀밭 위의 점심 저녁을 즐긴다. 이들은 추모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없는 연민을 느낀다.
왔으니 이참에 노란 풍선 옆에서 셀카 한 장 박아주고, 집회의 추억으로 핸드폰에 아로새긴다.
이런걸 추모-집회 패키지 관광이라 해야할까.
맛난 도시락 싸오신 분들부터, 술판 흥건하게 벌이시는 분들, 길거리에서 취해 주무시는 분들, 삼삼오오 간만에 모여서 정모하시는 분들 모두가 어우러지니 절경이다.
추모의 예의를 다하는 예의지국의 감수성을 이해해야할런지,
아니면, 자신을 속일 수는 없어 그날 집회마저도 불참한 정직한 좌파들의 심리를 이해해야할런지 갸우뚱대다가
후달달하는 다리를 발견하고는 귀가했다.
추모제에서 나눠준 아리수는 사람이 먹을 것이 못 될것 같아 버렸고,
신촌역 화장실에서 '시민'의 편의'라는 말을 '고객의 편의'로 표현한 광고를 보고는 참았던 짜증이 확 밀려왔다.
네임펜으로 막 욕을 지껄여 놓고 나왔다.
이 날, 용산 강제철거와 삼성 무죄판결 콤비가 우리를 조롱했다.
5/30
전경들 하나하나가 개미같이 생겼다.
공포감이 느껴질 정도로 무수한 개미떼들이 집회 나온 이들을 몰아세운다.
저열한 그들은 만 여 명에 가까운 인파를 좁디좁은 정동골목으로 가둬 놓고는 진압한다.
쥐 잡으러 온 시민들을 쥐 잡듯 잡는 전경들.
인해전술이 왜 무서운지 알 것같다. 시청부터 종로2가까지 전경차가 줄지어있었다.
시청 앞은 정말 추웠는데, 무교동을 지나 젖과 꿀이 '거꾸로' 흐르는 청계천을 지나니 왜이리 따뜻한지
지척인 이 곳이 과연 같은 땅인가 싶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져 온다.
전경차가 막아주니 아늑한건가? 흙흙
종로에서 스키니 룩에 술 한 잔 하셨쎄요 하신 분들을 보니 이 쏘쿨한 젊은이들과 나는 다른 세상에 사는 것같다.
남자들은 끈적대고, 여자들은 또각댈뿐 시끄럽기는 매 한가지.
휑한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귀가.
3.
휴...
댓글중에 ‘승인 대기중’이라고 뜨는 것들을 보니 티스토리에서 댓글 ‘검열’을 하는 모양이다.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
정말 사향쥐 얘기 꺼내면 블라인드 처리되는 건가.
- 공부하고 싶습니다. 뻥 아니예요, 님들 제발 좀 도와주센... ㅜㅜ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id=46545 만 보고 잘 거임-_-)
1. 말, 지식, 권력
대화의 역학관계 안에서는 지식을 담보로 말이 존재하고, 제시된 말의 권력을 승인 받는 과정이 있다.
회의와 경솔 사이에서 아직 운을 못 떼는 입장에서는 대화에 내재한 권력의 상층부에 접근할 수 없음을 알게된다.
다만, 대화를 통해 정교해져가는 의식의 선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 날의 수확이고 낙이다.
2. 머리부터 발 끝까지 알 수 없는 괴롭힘에 며칠간 시달리다 깨니,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언어도단이라는 변증법적 틀 안에 매몰되지 않는 과학적 사유를 위해,
말에 갖가지 색만 입히는 데에만 시간을 보내지 않기 위해,
감정의 떨림에 진동하다 진을 빼버리지 않기 위해,
부단한 계산이 필요하다.
적어도 감정, 사유, 표현, 이 셋 중 하나에 매몰되지 않고, 이들 사이에서 오갈 여유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질구질한 말은 담배보다도 훨씬 끊기 어려운 것 같다.
책상 앞에 산더미처럼 각종 문서들과 책들이 쌓여가지만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것이 어언 세 달 째.
블로그 포스팅을 비롯한 일체의 행동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아... 아랍문화축전에서 본 여섯 편의 영화는 모두 도가니탕이었지만 하앍ㅜㅜ)
2.
지긋지긋한 자살의 풍경,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이다.
익숙한 풍경 안에 하나의 이름이 추가되었다.
하필 오늘 이 진부한 이름을 되뇌어본다. 오늘만.
노무현.
주말 아침 노트북 앞에서 그의 죽음과 관련된 기사를 보았을때,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두부외상이라니 물컹한 두부도 생각났고, 자극적인 소식들 앞에서 한참을 멍때리고 있었다.
3.
'노무현은 당신에게 무엇이었습니까?'라는 기사에 답하고 싶었다.
'나는 그와 아무 상관이 없소.'
정말일까.
엄마는 내일 낮에 시청 앞 대한문에 갈 것이다. (왠지 3.1운동 90주년 기념으로 6.1운동 어떨까 싶은 철딱서니 칼슘개그)
그리고.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2002년 대선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노무현을 찍으라고 부추겼던 경험이 있다.
이상.
'정치는 선거다'라고 생각했던 당시 '순수' 노빠로서의 고백이다.
4.
FTA 타결이나 삼성 떡검, 이라크 파병 등 그의 정책들은 그 개인만큼 '매력적'이지 못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례 중 하나, 농민을 등진 그가 퇴임 후 오리농법으로 쌀을 생산하는 모습을 봤을때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죽쑤니 쥐가 받아먹었다.
자승자박이라는 말이 (고인의 예우에 어긋남을 알지만) 적절한 표현이지 않을까.
여기서 한 개인으로서 대통령의 고뇌를 배려하는 것은 오지랖이다.
대표를 맡고 있는 한, 그는 인간, 또는 개인person이 아니라, 효과를 불러오는 하나의 표상이 아니던가.
그의 한계이자 최선이었겠지만, 그는 정말 '인간'이었던것 같다.
(믿을 수 있을까? 직접 본거라고는 대선 후보일때 계란 맞던 한강변의 풍경 뿐이지만, 여튼 사진과 떠도는 일화로는 그럴듯하다.)
5.
386의 감수성이 잘 이해되어지지 않는다면, 02년 대선 당시로 시간을 돌려보자.
그 때 시민들의 환호어린 지지와 지금의 탄식이 연결되어 하나의 효과를 내고있는 이 상황을 따지고 보면
그가 아마도 최초의 정치적 DIY(Do it yourself) 아이콘이라는 점이 적지 않은 원인으로 드러난다.
그를 만든 것은 시민이었다. 탄핵으로부터 지켜준 것도 시민이었다. '지못미'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또한 시민이다.
왜 시민들은 그를 애도하는가.
앞서 떠올려본 그의 '개인'적인 매력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시민들이 '지못미'하는 것은 그 개인이 아니라 그가 표상하는 민주주의이다.
(다시 그 부분부터 생각해야한다는 점이 사실 매우 고통스럽지 않은가.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보복은 겨우 1년이 지났을 뿐인데.)
그의 사망은 그가 얼마간 이루어온 비권위적 토대의 사망선고일 것이다.
이에 빈부양극화, 청년실업, 물가상승이 안겨주는 고통이 추가된다.
(노무현의 마음은 그같지 않을지라도, 위의 경제적 파탄은 그의 손에서도 빚어진 것들이다.)
6.
그렇다면,
자신을 버리라고 한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느 누군가는 그가 잘못되서 MB를 찍었다고 했다.
또 어느 누군가는 그의 숭고한 정신을 그의 post(유--, 문--)들이 계승해주기도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같은 과정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또 다시 노무현을 만들어내고 버릴 것이다.
두 잇 유어셀프.
그의 삶과 죽음이 내는 효과가 향후 어떤 결과를 불러낼지는 미지수이다.
그것을 만드는 주체는 우리들이다.
상상력은 권력을 쟁취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권력은 원래 우리의 것이었다.
정리하고,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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