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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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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원문) 







1.

'이미' 모든 예술 중에 영화가 세상과 가장 가까이 있어요. 그래서 잘못하면 이 세상과 영화는 서로 뒤섞이거나 위치가 혼동될 위험을 갖고 있죠. 그와 반대되는 게 음악이 아닌가 싶어요. 루카치는 말년에 음악에 대해 몰두했지만 결국 결론을 내리는 데는 실패했죠. 그만큼 멀리 있어요. 말하자면 현실과 예술의 거리에는 수많은 스펙트럼이 있고, 영화는 가장 가까이에, 음악은 가장 멀리에 있는 것 같아요.

다시 영화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찍어도 그 세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영화 속에 세상의 흔적이 잠입하고, 그것이 영화에 어떤 동력을 제공하고, 움직이고 활동하게 만들죠. 이런 특성은 세상이 영화에 미치는 힘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영화가 세상을 흡수하는 능력이기도 해요. 그때 중요한 것은 만드는 자의 의지예요. 현실의 어떤 점을 흡수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때로는 현실에 직접적으로 굴복하기도 하고, 반대로 지나치게 심미적으로 흘러가 버리기도 해요. 둘 다 아닙니다. 틀린 방법이에요.

중요한 것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선한 의지' 예요.

자, 이제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죠.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가. 어디까지가 선이고 어디부터는 악인가. 이쯤되면 철학의 지점에 다다라요. 따라서 저는 영화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는 윤리-미학-정치라고 생각해요. 이 요소들 중에 하나만 무너져도 성립할 수 없어요. 이 윤리-미학-정치가 영화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흔히 돈이냐 예술이냐라는 식으로 질문하는데, 그건 틀린 질문이에요. 너무 많은 것들을 단순화하죠. 틀린 질문이 틀린 답을 유도하고, 그런 식으로는 절대 어떤 결론에 다다르지 못해요. 예술이냐 아니냐, 이런 식으로 질문의 가능성을 좁혀버려서는 안돼요.




2.

결국... 영화에서 봐야 하는 건 영화죠. 무슨 말이냐면, 사람들은 보통 영화에서 줄거리나 배우를 본다는 거예요. 비평에서도 그런 경우를 많이 봅니다. 제가 동료들의 비평에서 가장 실망하는 경우는 비평이 영화와 TV를 구별하지 못할 때예요. 그럼 영화에서 영화를 본다란 뭘까. 쇼트를 보는 겁니다. 쇼트의 활동 범위. 활동력. 목적. 미학적 개념. 씬 속에서의 위치. 그리고 그 위치들의 상호 조직과 관계. 즉, 영화 안에서 쇼트라는 세포가 생명을 얻는 과정. 그 쇼트의 질료적 기반은 절대적으로 테크놀러지 그 자체입니다.

음악을 예로 들면... 음악을 그냥 많이 듣는다고 해서 음악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예요. 한계가 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씨디 장수와 그에 비례한 지식만 늘어납니다. 누가 작곡하고 누가 연주하고... 저도 그런 적이 있었어요. 아무리 들어도 뭔가 제자리를 도는 것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죠. 그러다 음악을 좋아하는 어떤 분과 그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한참 얘기하다가 그 분이 조심스럽게 물으시는 거예요.

'그런데 혹시, 악보를 못 읽으시는 건 아니죠?'

그때 진짜 철렁했어요. 허를 찔린 기분이었죠. 지금은 아주 잘은 아니지만 악보를 읽을 수는 있어요. 그러니까 음악이 더 이해가 되고, 더 많은 걸 느끼게 됐어요. 음악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변화가 이해의 폭을 넓힌 거죠.

영화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아무 생각없이 보는 영화에서 얻는 건 목록들, 그러니까 감독 이름, 배우 이름, 제목 뿐이에요. 어느 순간부터는 양적으로만 팽창할 뿐이죠. 많이 본다는 것, 양적 팽창이 질적인 것으로 전환되는 순간moment, 그것이 질료적 기반에서 시작됩니다.




3.

저는 읽는 이를 설득할 생각이 없습니다. 제게 글이란 내 자신의 생각이 진전되는 과정을 따라가는 기록일 뿐이에요. 영화를 통해 어떤 사고를 갈데까지 가도록 하는거죠. 제 글은 '내 질문에 내가 답을 하는 과정'입니다. 나와 영화가 대면하는 게 아니예요. 영화를 본 나와 글을 쓰는 내가 대면하는 거죠.

종종 저는 문장 대신에 단어들을 나열할 때가 있어요. 글을 쓰다 보면 어떤 생각이 나고 그걸 쫓아가느라 그래요. 그런데 글을 다듬으려는 과정에서 그 생각 혹은 느낌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어요. 제겐 처음에 떠올랐던 생각을 붙잡는 게 더 중요합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질문만 있는 경우도 있어요.

(잠시 침묵) 질문은 종결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순간 영화가 끝나요.

(잠시 침묵) 내 두뇌 안에서 어떤 영화를 종결하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질문을 끝내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영화가 제게는 가장 위대한 영화예요.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고, 고민하고 생각하게 하고, 더 나아가게 하는 영화입니다. 제가 관심있는 건 그 나아감이에요.